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모 줌왈트 (문단 편집) == 퇴역 이후 == 1974년 53세라는 젊은 나이(남들은 이 나이에 겨우 별 다는 사람들도 있다...)에 퇴역한 줌왈트는 1976년 선거에서 [[민주당(미국)|민주당]] 소속으로 [[버지니아 주]]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현직이었던 [[무소속]] [[해리 F. 버드 주니어]] 의원에게 패했고 대외활동이 뜸해지나 했지만... 좀 특이하면서도 가슴아픈 계기로 유명세를 다시 얻게된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함께 복무했던 아들인 엘모 줌왈트 3세가 전후 갑자기 암에 걸리고 말았다. 바로 '''악명높은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의 후유증'''으로 암이 발병한 것이다. 게다가 1977년 태어난 줌왈트의 손자도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기형아로 태어나면서 가족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이후 줌왈트는 아들이 필요로 하는 골수 기증의 활성화를 위해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다녔고, 비록 아들은 여동생에게서 골수를 이식받긴 했지만 줌왈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미국 골수 기증 프로그램이 설립되어 줌왈트가 초대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공로로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86년에는 건강이 좀 나아지던 아들과 함께 이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1988년 결국 아들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줌왈트는 2000년 1월 2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듀크 대학교]] 의료원에서 희귀성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 근원은 해군 함정근무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들이킨 '''[[석면]]'''이었다. 해군사관학교 교회에서 영결식이 치러졌고 그의 유해는 해군사관학교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후 미 해군은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을 뛰어넘는 [[외계인 고문]]의 결정체인 차기 구축함 시리즈를 '''[[줌왈트급 구축함]]'''으로 명명하여 그의 헌신과 삶을 기리고 있다. 다만 줌왈트급이 워낙 흉악스러운 가격 때문에 3척만으로 마무리되고 다시 알레이 버크급으로 회귀한게 문제라면 문제. 일각에서는 참모총장 시절 해군 전력을 경제적으로 강화시켰던 줌왈트에 대한 고인능욕이라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 죄다 최고성능으로만 떡칠을 하니 가격은 [[버틸 수가 없다]]. 줌왈트급 네임쉽 USS 줌왈트의 명명식에서는 줌왈트의 두 딸들이 참석하여 샴페인을 터뜨렸다. 줌왈트에게는 이외에 [[미 해병대]] 장교로 복무하여 중령까지 지낸 아들 제임스가 있다. 제임스의 아들인 제임스 줌왈트 주니어도 해군 EOD 팀에서 복무했는데 동성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줌왈트 제독의 아버지인 줌왈트 1세도 세계대전기 육군 군의관으로 참전하여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전례가 있고 엘모 줌왈트 3세 또한 베트남에서 동성무공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비록 직계는 아니지만) '''4대가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희대의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